안전하지 않은 한국사회에 사는 한국인은 감정조절이 힘들다!

감정조절 안전하지 않은 사회에서 나를 지켜 내는 방법, 정신분석가 권혜경

냄비 근성 = 감정 조절의 문제?

흔히 한국인의 국민성을 냄비 근성이라고 한다. 어떤 일이 일어나면 감정이 빨리, 쉽게 끓고 또 그 들끓었던 감정이 빨리, 쉽게 식는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것이 그냥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병리적으로 감정 조절이 안 되는 결과로써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현상이라고 말하면 너무 충격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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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거진 창문 너머의 생각]

2년 전 일어났던 세월호 참사는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해외에 있는 동포들에게도 큰 충격을 안겨 주었고, 한국인들 사이에는 트라우마나 PTSD(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라는 말이 유행처럼번졌다. 이 비극적인 사고를 겪고 나서 그전까지 자신과 가족, 사회에 대해 당연하게 느껴 왔던 안전감이 위협을 받아 긴장하게 되면서 사소한 일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고, 쉽게 분노하고, 악몽으로 잠 못들고, 우울감과 무력감을 느끼는 등 자신의 감정이 조절되지 않아 힘든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이러한 이상한 경험을 설명해 줄 수 있었던 개념이 바로 PTSD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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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21일 시민들이 전남 도청 앞 저지선을 뚫으려다 멈춘 버스를 바리케이드로 이용 계엄군과 대치하고 있다.  [출처: 한겨레]

요즘은 미디어와 SNS의 발전으로 사건과 사고를 포함한 많은 정보들이 보다 쉽게, 또 빠르게 대중들에게 전파되어 더 많은 반향을 불러 일으키기에 세월호 참사가 더욱 유례없는 엄청난 비극으로 비춰졌지만, 사실 역사적으로 한국에서는 늘 크고 작은 세월호 참사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겪은 사람들은 충격을 받고 분노하며 PTSD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그 경험들이 다른 사람들과 연계되지 못하고 개개인이 고립된 형태로 감정 조절의 부재를 겪었기 때문에, 이를 대다수 대중이 관심을 갖고 동일하게 경험하는 하나의 사회적・집단적 현상으로 묶어 낼 수가 없었다는 점에서 달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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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거진 창문 너머의 생각]

병리적인 감정 조절 부재는 역사적・사회적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에서뿐 아니라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다반사로 일어난다. 뉴스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자식을 폭행하고 심지어는 죽음에 이르게까지 한 부모,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무차별적 폭행과 강력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 사소한 이웃 간 시비가 발단이 되어 벌어진 살인사건, 인터넷에 무자비한 악플을 달며 폭력성과 잔인함을 드러내는 사람들, 무고한 시민에게 염산을 뿌리는 등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의 분노를 극단적으로 표출하는 사람들 이야기 등 한순간에 스스로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일들이 바로 감정조절을 못한 결과로 일어나는 것이다. 그뿐인가? 보다 일상적인 예를 들면 쉽게 짜증을 내고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자극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태도, 완벽을 추구하며 조금이라도 부족한 것은 내치는 태도, 사람들을 불신하고 내 일이 잘 될 거라고 믿지 않는 비관적인 태도마저도 감정 조절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결과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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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합뉴스]

감정 조절은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보다 균형 잡힌 삶을 행복하게, 나에게 이로운 결정을 하면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열쇠다. 이러한 감정 조절을 잘 하려면 반드시 안전감을 느껴야 하는데, 안전감은 개인적 차원의 안전과 사회・집단 안에서의 안전 두 가지를 다 이른다. 인간은 수백만 년 동안 진화를 거듭하면서 생존에 이득이 되지 않는 것들을 없애고 생존을 이롭게 하는 기능들은 강화・발전시키며 살아남았다. 이 과정에서 생존에 최적화된 상황은 ‘안전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었기에, 어떤 이유에서든 안전이 위협받게 되면 우리 시스템은 이를 생존이 위험해진 상황으로 인지해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다시 안전감을 회복하기 위해 즉각적이고 필사적인 노력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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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에 의심하고, 늘 불안에 떨고, 무슨 나쁜 일이 일어날까 항상 긴장하고, 남들이 자신을 해칠 거라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히는 것, 상대방이 자신을 공격하기 전에 선제공격을 해 버리는 것, 안심했다가는 뒤통수 맞을까 봐 잠시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늘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 등은 바로 안전하게 느끼지 못해 감정 조절이 되지 않는 상태를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면서 안전 여부를 계속해서 시험하는 것이기도 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병리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 같지만 그 이면을 보면 믿지 않아야 내가 죽지 않고 상처받지 않고 살 확률이 더 높다는(나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어떻게 보면 안전한 상태에 도달하고 싶은 마음이 어떤 필요와 욕구보다 앞서는 간절하고 절실한 반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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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이 위협받는 가운데 감정 조절이 되지 않으면 우리는 생존을 위해 싸우기, 도망가기, 얼어붙기 등의 방어기제를 쓰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방어적인 상태가 되면 생각하는 능력, 기억력, 이미 알고 있는 정보에 접근하는 능력, 사고와 감정 및 신체의 유연함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주변 환경과 사람들을 모두 적으로 간주해 싸움, 전쟁,살인, 신체적・감정적・언어적 폭력 등이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안전감이 무너지고 감정 조절이 안 되는 상태는 이성과 도덕, 교양, 배려 등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만의 품성을 발휘할 수 없게 해, 우리를 생존의 수준에서 약육강식의 논리만으로 살아가는 한 마리 동물과 같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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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가 생존 수준이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누리는 인간다운 인간으로 잘 살기 위해서는 감정 조절 능력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감정 조절 능력은 안전하게 느낄 때에야 비로소 획득할 수 있다. 그리고 ‘안전하게 느낀다’는 것에는 안전한 가정 안에서 형성되는 개인적 차원의 안전감과 직장, 학교, 국가 등 내가 속한 집단에서 나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느낌을 받는 사회적 차원의 안전감이 있다. 이 두 가지의 안전감은 분리되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안전한 가정에서 감정 조절이 잘 되는 개인이 나오고, 이런 개인들이 모여서 형성하는 사회・국가는 보다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 구성원들의 감정 조절을 촉진시키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회・국가는 또 개인과 가정의 안전감의 바탕을 제공해 주어 개인과 가정을 더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다. 이렇게 서로 상보적인 선순환의 고리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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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합뉴스]

다시 냄비 근성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한국인의 냄비 근성 즉 ‘병리적인 감정 조절의 부재’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수많은 외세의 침입과 일제 강점, 6.25 전쟁, 군부 독재를 거치면서 국가와 그에 속한 개인의 안전은 끊임없이 위협을 받았고, 그 속에서 개개인이 생존하기 위해 자신의 안전만을 최대의 목표로 삼은 결과가 다른 구성원들의 안전감을 위협하며 결과적으로 또 안전하지 않은 사회를 만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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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자주시보]

또한 성공에 대한 집착으로 인한 한국 사회의 과도한 교육열 역시안전감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어른들(부모나 선생님 등)은 우리 아이들에게 공부를 잘해야 성공한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하는데, 성적이라는 것이 상대평가다 보니 모든 아이들이 죽어라 공부해도 결국 잘한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아이는 소수의 상위 몇 퍼센트에 그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상위권에 들기 위한 과도한 경쟁이 벌어지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은 성공할 수 없다는 불안감을 갖게 된다. 상위권에 든 아이도 언제 밀려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1등을 하면 그때부터는 정상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더욱 무시무시한 전쟁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어렸을 때부터 사회가 만들어 놓은 무한 경쟁 속에서 아이들은 더불어 사는 가치를 배우기보다는 자신의 성공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내가 잘되기 위해서는 남이 나보다 못해야 하며 남을 짓밟고 올라서야 성공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란다. 결국 이런 삶의 태도가 개개인의 생존과 안전을 위협하는 근간이 된다. 이런 역사적・사회적 환경 속에서 한국 사람들은 어른 아이 할것 없이 안전을 위협받고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며 감정 조절이 잘 될수 없는 필연적인 상황에 놓여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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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조절: 안전하지 않은 사회에서 나를 지켜 내는 방법, 을유문화사]

감정 조절은 모든 개개인이 보다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핵심으로 현재 심리학계에서 유행처럼 떠오르는 용어이지만, 단순히 그러한 이유를 넘어서 위와 같은 한국의 특수한 역사적・사회적 상황 때문에 한국인들에게 더더욱 필요한 개념이다.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되어 감정 조절의 개념과 근원, 감정 조절의 결과로 나타나는 애착 유형, 대한민국의 역사적・사회적 사건들이 국민의 감정 조절 능력에 미친 영향, 감정 조절을 잘 하기 위한 방법들을 제시한다. 보다 더 구체적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장에서는 감정과 감정 조절의 개념을 설명하는데, 감정 조절이 왜 중요하며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았을 때는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살펴본다. 그다음으로 감정 조절의 필수 조건인 안전감에 대해 알아보고, 누군가에 의해 감정 조절이 된 경험이 내 감정을 조절하는 데 있어 왜 중요한지를 살펴볼 것이다.

2장에서는 감정 조절의 원인이자 기본 배경이 되는 우리 몸, 즉 감정 조절의 신경생물학적 메커니즘에 대해 최신 경향의 뇌과학 연구들을 통해 살펴볼 것이다. 우리 뇌 속에 있는 ‘파충류의 뇌’인 뇌간,‘포유류의 뇌’인 변연계, ‘인간의 뇌’인 대뇌피질이 서로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살펴보고, 감정 조절과 우리의 방어기제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안전하게 느끼지 않으면 우리 몸과 마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며 다시 안전감을 회복하고 감정 조절이 가능한 인간의 뇌를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본다.

3장에서는 개인적 안전감과 감정 조절에 초점을 맞춰 유아기에 부모가 아이의 감정 조절을 어떻게 도와주었는지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는 애착 유형들을 살펴보고, 각 사람이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애착 유형들이 어떤 성격으로 발전하며 개개인의 문제 규명과 해결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본다. 그리고 다양한 애착 유형을 형성한 사람들이 만나 함께 살아가는 기본적인 단위인 ‘부부’와 ‘직장 내 인간관계’를 예로 들어, 가장 일반적인 조합인 집착형과 회피형 인간이 만났을 때 무슨 일들이 일어나며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4장에서는 사회적 안전감과 감정 조절을 다룬다. 대한민국의 역사적・사회적・문화적 사건들이 한국인의 감정 조절 능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짚어 본다. 그리고 역사적 트라우마가 제대로 다루어 지지 않고 치유되지 않았을 때 자손 대대로 대물림되는 사례들을 통해 그 심각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려 한다. 한편 우리 문화에 뿌리깊이 박힌 남아선호사상이 개인과 인간관계에 어떤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도 살핀다.

마지막으로 5장에서는 감정 조절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개개인이 보다 인간다운 인간으로 건강하고 균형 잡힌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감정 조절을 보다 더 잘 할 수 있도록 상상을 이용한 방법과 신체적 상태를 바꾸는 방법 등 일상에서 손쉽게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소개한다.

결국 감정 조절 능력이란 살면서 불가피하게 위협받는 신체적・심리적 안전감을 보다 빨리, 유연하게 회복시킬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감정 조절이 되는 상태라면 우리는 자신을 방어하는 데 지나친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되므로 이 에너지들을 훨씬 더 창조적・생산적으로 쓸 수 있게 된다. 또 기억이나 기존에 알고 있던 정보에 객관적으로, 용이하게 접근해 이를 활용하게 된다.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만큼 신체적으로도 더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고,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도 색안경을 쓰고 보는 대신 이해심이 높아져 조화롭고 만족스런 인간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각 개인이 보다 인간다운 인간이 되고, 그렇게 인간적인 개인들이 모여서 인간 중심의 사회를 만드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희망하며 이 책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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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18, 2017


Psychology Korea의 로고는 목화꽃입니다. 권혜경 박사가 처음으로 한국에서 트라우마 세미나를 시작했을 때, 문익점 선생님이 목화씨 세점을 중국에서 가져왔을 때와 같은 설레임과 희망으로 시작을 하였습니다. 목화씨 세점이 한국에 들어와 뿌리를 내리고 사람들이 목화솜으로 지은 따뜻한 옷을 입게 되었듯이, 권박사가 문화의 중심지 뉴욕에서 가져오는 작은 지식의 씨앗이 이땅에 뿌리내려서 많은 사람들이 그 혜택을 받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로고에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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